메모

[철학적 메모]얼간이들의 세계에서 생존/승리하기 - 진짜와 가짜

통합메일 2021. 1. 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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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사회가 씁쓸하게 만든다. 이 어지러운 틈바구니를 간명화하자면 진짜와 가짜의 싸움이다. 서로가 서로를 가짜로 몰아세우고, 앞다투어 스스로를 진짜라고 지칭한다. 이러한 혼란이 학문과 사법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학문에서는 참된 전제가 어떻든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사회에 팽배하다. 이른바 사람들은 진짜가 아니다. 재미를 추구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재미와 쾌감을 느끼는 것은 승리할 때이다.

<승리>: 생각해보면 이것이 제일 문제다. 승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비교를 전제로 성립한다. 승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패배가 있어야 한다. 패자가 없이는 승자란 존재할 수 없다. 모두의 승리라는 말은 형용 모순이다. 그리고 승리는 인간에게 크나큰 쾌감으로 작용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뇌과학의 측면에서 승리는 왜 우리의 뇌에 쾌감으로 작용할까? 부러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따. 아직 어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누구보다 칭찬에 민감하다. 한 아이를 칭찬할 경우 다른 아이들은 그러한 칭찬에 포함된 코드를 굉장히 빠르게 포착해서 반응한다. 이것은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칭찬이라는 것은 특정 능력이나 행위에 포함된 가치에 대한 평가다.

가치를 추구한 것이 인간만인 것은 아니다. 동물이나 식물도 가치를 추구한다.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은 긍정적인 가치를, 생존을 방해하는 것은 부정적인 가치를 갖는다. 다만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생존 너머에 있을 뿐이다. 왜 인간은 생존 너머의 가치를 추구할까?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가 생존 즈음에 머물렀다면 세상은 지금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필요가 많지 않으니 많이 가지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사람들의 문제는 필요가 많은 것일까? 아니면 필요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일까?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시도들은 대부분 인간의 필요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 다르다는 말은 인간과 동물의 필요가 꼭 같은 필요는 없음을 정당화한다. 과연 다른 것 같기는 하다. 생물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측면에서 어느 순간 인간은 동물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겉모양이 달라졌고, 할 수 있는 일과 하는 일, 삶의 양식이 달라졌다.

그러한 방식 중의 하나가 '승리'다. 동물이나 식물은 생존 이외의 것을 위해 경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동물은 생존에 성취감을 느낄지언정, 승리에 도취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어느새 승리에 엄청나게 도취되며 집착한다. 심지어는 주객이 전도되어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이를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가늠하는 척도로 삼을 수도 있따. 본연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은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반대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보자 인간은 승리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비본질적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오늘날 주로 진짜와 가짜의 레토릭을 활용한다. 이로 인해 세상은 진짜는 살아남고, 가짜는 죽어 사라지는 것을 규칙으로 하는 각축장으로 변한다. 그 안에 몸담은 이들 모두 본연의 행복으로부터 한없이 멀어진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정치 사회에 대한 모든 관심을 끊으라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제대로 생존하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치사회에 대한 관심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그러한 정치사회를 마주하는 태도에 달렸다.

앞에서도 암시했던 가치의 전도를 문제로 지적할만하다. 생존의 문제보다는 승리와 패배를 더욱 우선시하는 게 문제다. 보다 근원적 문제를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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