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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교육

생철학 쇼펜하우어와 니체

by 통합메일 202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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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철학
생철학은 쇼펜하우어를 시조로 하고 니체, 베르그송, 딜타이, 짐멜 등에 의해 대표되는 철학이다. 

원래 이것은 헤겔의 이성주의, 주지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났기 때문에 생을 경화된 고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살아 있는 생,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는 생으로 파악하려 한다. 그리고 생을 파악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개념, 판단 등 합리적 방법에 의하지 않고 생에 적응해서 생을 직접 파악하려고 하는 직관적 비합리적 방법을 가진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의 이성주의를 정면에서 반대하고 칸트의 물자체(物自體)를 '살려고 하는 맹목적 생존 의지로 봄으로써, 의지를 세계와 삶의 본질 또는 기조로 삼았다. 의지의 활동은 결코 쉬지 않고, 또 영원히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으로서 무정부적 경쟁, 약육 강식, 만인 투쟁의 현실 사회의 상징인 것이다. 따라서 이 세계는 고뇌로 차 있으며 여기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는 금욕과 무의지에 의한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는 허무적 염세주의를 주장하였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부정적 생철학을 반대하고 비합리적 생을 비합리적인 그대로 긍정하려는 생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취한다. 그러므로 니체야말로 진정한 생철학자라 할 만하다. 니체도 세계의 본질을 의지에 두었으나 쇼펜하우어의 의지가 맹목적인 데 반하여, 니체의 의지는 부단히 보다 큰 힘을 추구하며, 부단히 성장강화하려는 의지, 즉 '권력에의 의지'이다. 힘의 성장에는 물론 파괴가 수반된다. 우리는 힘의 성장에서 환희를, 힘의 파괴에서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고통의 총량은 열락의 총량을 능가한다는 이유로 생을 부정하고 의지를 근절하려는 약한 염세관을 니제는 취하지 않는다. 창조의 일면에 파괴가 따르는 자기 모순적인 디오니소스적 생성, 언제나 같은 일이 영원히 되풀이되는 영겁 회귀의 세계, 그것은 확실히 허무한 세계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이 허무한 세계를 허무한 그대로 받아들여 생을 긍정하고 살아가는 운명애(運命愛)의 태도 이것을 니체는 장래의 새로운 인간인 초인이 지녀야 할 태도라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는 허무주의를 극복한 최초의 완전한 허무주의자로 자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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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도덕의 계보(선악의 계보)
주인도덕(힘에의 의지)과 노예도덕(열등감/복수심)
-노예의 반란: 힘에의 의지를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
-양심과 죄의식을 도덕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주인도덕이 억압됨.
-이러한 작업의 선봉에는 금욕주의적 성직자가 있다.


니체의 초인(위버멘쉬) 3 단계
1낙타 - 복종
2사자 - 기존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저항, 계몽을 바탕으로 투쟁하는 존재
3어린아이 - 지극히 자연스럽고 순진무구한 존재, 무궁한 창조를 거듭하는 존재(진정한 초인)
(키르케고르와 비교할 때 니체는 신에게 기대지 않는다.)


영원회귀
- 동일한 것을 영원히 반복한다는 것
- 그 정도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라

<<자기연민>>

Q.근사하고 낭만적이다. 하지만 과연 모든 이에게 보편화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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