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윤리교육

1.초기 기독교의 분열(중세, 근대 초 서양 기독교 세계는 왜 분열되었을까?)

by 통합메일 2024. 6. 12.
반응형
  1. 신양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현재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기독교인들의 공동체가 생겨났다.
  2. 처음에는 주로 유대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떤 기독교가 유럽으로 전파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은 '이방인의 사도'로 불린 바울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의 전도 여행을 통해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했고 각처에서 교회를 세우는데 힘쓰다가 결국 로마에서 순교했다.

 

초기 기독교 내부의 분열

  1. 내부에서 제기된 최초의 위협은 1세기 말엽부터 대두한 영지주의(Gnosticism)로부터 나왔다. 그노시스(gnosis)는 '비밀스러운 지식'을 의미한다. 영지주의자들은 모든 물질세계를 타락의 산물인 동시에 악한 것으로 보고 인간의 영혼은 육체로부터 해방됨으로써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땅에 나타났지만 실제로는 단지 영이었을 뿐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성육신을 부정했고, 하느님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지주의를 경계한 초대 교회는 신자들에게 기도문을 외울 것을 요구했고, 이는 훗날 사도신경으로 발전한다.
  2.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얻지만, 기독교는 통일적 신앙 공동체가 아니었고, 단일한 교리가 없었고,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3. 로마 제국의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비록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높은 분이긴 하지만 여전히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주의는 이단으로 규정된다. 이 회의에서 그리스도는 온전한 인간이 동시에 온전히 영원불변한 하느님이라고 주장됐다. 하느님(성부)과 예수 그리스도(성자)가 동일한 본질을 지녔다고 결론지었다. 콘스탄티노플 공으회는 니케아의 결정 사항을 재확인하면서 여기에 성령에 관한 부분을 첨가함으로써 삼위일체 교리(Trinity)를 최종적으로 확정짔는 것과 동시에 니케아 콘스타티노플 신조로 알려진 신앙 고백을 확립하게 되었다.
    *Trinity: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실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
    *콘스탄티노플 신조: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개신교, 성공회 등의 교회들이 유일하게 다같이 수용하고 있는 기독교의 기본 신조

 

동로마 제국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 안의 신성과 인성 관계 논쟁

  1. 경교
    기존의 견해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완전한 결합이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엄격히 구분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적인 본질은 예수의 인간적 행동이나 고통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페르시아와 인도로 건너가 자신들의 교회를 세웠다.
  2. 단성론
    콘스탄티노플의 수도원장 에우티케스는 성부와 성자가 일치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인성은 일반 사람들의 인간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하면서 사실상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인정했다. 하지만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단성론을 배척하면서 그리스도는 서로 분리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동될 수도 없는 두 본성으로 존재한다는 입장을 채택했다. 이후 단성론자들은 네스토리우스파와 맟나가지로 교회 주류로부터 떨어져나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교회를 형성했다.(시리아의 야코부스 교회,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콥트 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이를 오리엔트 정교회라고 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