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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선량한 차별주의자-6장. 쫓겨나는 사람들

by 통합메일 2021.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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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한국에서는 대중시설의 주인이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국가 등을 이유로 손님을 거부해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 어떤 사우나는 아예 '내국인 전용 찜질방'으로 영업한다고 한다.

 

누구든 손님을 거부할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 인종분리주의자였던 롤스턴이 원하던 그 사회는 정말 정의로운 것일까?

 

<누구를 거부하는가>

노키즈존, 노스쿨존, 노장애인존

 

손님에게 예의를 지켜달라고 요구해도 된다고 해서 어떤 손님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예 특정 '집단'을 거부해도 괜찮은 걸까?

 

단체 체벌은 책임이 없는 사람을 처벌하는 불합리한 제도이고, 잘못이 있는 사람에게도 지나친 형벌이다.

 

누군가가 문제가 있었다고, 그 집단 모두에게 연대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

 

왜 어떤 집단은 특별히 잘못이 없어도 거부되는데, 어떤 집단은 개별적으로만 문제삼고 집단으로는 문제삼지 않을까?

(집단의 필연적 특징이 문제가 아닐까? 이를테면 아이들은 장난치는 것이 필연이듯,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부당하지.)

 

<배제와 분리의 메커니즘>

미국이 민권법을 제정하여 차별을 금지시킨 것은 기업이라도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만든 것이었다. 대중을 상대로 영업을 하여 얻은 이익을 오롯이 사유재산이라고주장할 수만은 없다. 크든 작든 기업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책임이 있다.

 

한편으로 미국의 이야기는 엄청난 악으로 여겨지는 부끄러운 인종분리의 역사가 어찌 보면 사소한, '불쾌한 감정'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역사가 달라질 수 있다고 알려준다. 어떤 집단에 대한 혐오감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때 불평등은 더욱 깊어진다. 안타깝지만 법과 규범 없이 개인들의 자발적 합의를 통해 평등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불평등한 체제를 유지시키는 우리 감정으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종교의 이름으로>

인종분리에는 종교적인 이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인종이 다른 것은 하느님의 섭리이니 서로 분리되어 마땅한 만큼, 하물며 결혼은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교리 내에서 차별은 나쁜 것이 아니라 신성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적 신녀밍 언제나 소수자를 차별하는 방향으로 작동한 건 아니었다.

 

<다문화주의 없는 다문화>

(외국인 아이들이 어린이집으로부터 거부되는 현상에 대해)

사실 누가 한국인인지도 모호하다.

 

중요한 건 이 경계를 가르는 권력이 누군가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 와중에 '다문화아동'이라는 단어는 왜곡된 한국의 풍경을 보여준다. 다문화라는 말은 본래 다양한 문화의 상호존중과 공존을 강조하는 사상인 '다문화주의'에서 온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각자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다문화'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진짜' 한국인이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용어로 쓰이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전에 단어가 오염되어 원본을 알기 어렵게 된 것 같다.

 

한가지 교훈은 분명하다. 때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상처를 주는 잔인한 의미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다문화는 낙인이고 차별과 배제의 용어가 되었다.

 

"차별은 단순히 지폐나 동전이나, 행범거나 영화의 문제가 아니다.ㄴ ㅜ군가에게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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