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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 1장.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by 통합메일 2021.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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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다수자 차별론>

1910년대 여성 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2016)를 보고 한 학생은 이렇게 반응했다. "당시에는 정말 여성들의 권리가 없었고, 그렇게 과격하게 싸울만 했어요. 하지만 요즘 여성들은 투표도 하고 옛날처럼 그렇게 차별받지 않잖아요.

(결과가 말해주는 여전한 차별을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

여성이 '평균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은 추상적이라 잘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어떤 여성이 자신보다 더 좋은 조건에 있다는 사실은 구체적인 감각으로 경험된다. (우리는 이미 차별에 너무 익숙해졌기 떄문이다.)

토크니즘이란 이렇게 역사적으로 배제된 집단 구성원 가운데 소수만을 받아들이는 명목상의 차별시정정책을 말한다. 토크니즘은 차별받는 집단의 극소수만 받아들이고서도 차별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회가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고, 노력하여 능력을 갖추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은 이상적인 평등의 상황과는 꽤 먼 상태임에도 평등이 달성되었다고 여기는 착시를 일으킨다.

이렇듯 사회적인 불평등과 개인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가 일치하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 더치페이 논쟁은 이 간극에서 나온다. 남성이라고 해서 모든 여성에 비해 경제력이 좋은 것이 아닌데도 마치 그런 것처럼 기대되고 데이트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면, 그 부담이 개별 남성에게 부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그렇다 둘 다 소득이 없다면 더치페이가 맞다. 하지만 둘 다 소득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두 사람의 소득 사이에 별 격차가 없다면?)

소수자 정책은 다수자가 차별을 하고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기에 다수자의 ㅇ비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다수자가 차별하지도 않는데 소수자가 차별받는다며 시정을 요구하는 정책들이 불합리하고 부당하게 느껴진다.

차별이 없다는 생각은 어쩌면 내가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는 간절한 희망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차별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다.


<평범해 보이는 특권>
나는 호의를 베풀 수 있지만 당신에게는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

호의성(시혜성) 자선사업이나 정책은 그저 선한 행동이 아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주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통제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는 일종의 권력행위이다.

특권이란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에 되는 온갖 혜택을 말한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이런 특권은 대개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고 많은 경우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권은 말하자면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비장애인들에게 유리하게 구조화된 사회에서 비장애인들은 특권을 향유하는구나.)

(그렇구나 차별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해서는 평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향유해 온 특권을 마주봐야겠구나. 차별에 반대한다는 것은 특권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 백인 특권

- 남성 특권

애초에 남녀가 평등했다면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거나 남성이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과연 여성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가?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이유가 자신이 불평등한 지위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는가?)

특권 역시 상대적인 개념이다. 다른 집단과 비교해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유리한 질서가 있다는 것이지, 삶이 절대적으로 쉽다는 의미가 아니다.

서로 다르게 힘들다고 봐야 한다. 불평등한 구조에서는 기회와 권리가 다르게 분배되고, 그래서 다르게 힘들다.

"너와 나를 다르게 힘들게 만드는 이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공통의 주제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가 권리와 기회를 요구할 때 그 결과로 기대하는 것은 편한 삶이 아니다.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요구하는 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하면서 나름의 삶을 헤쳐나가겠다는 의미다.

<기울어진 공정성>

기존에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평등해지는 것이 손실로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평등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상대의 이익이 곧 나의 손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진 집단은 차별을 덜 인식할 뿐만 아니라 평등을 실현하는 조치에 반대할 이유와 동기를 가지게 된다.

국가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쳐왔지만 주류로서 자신이 가진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여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진보'정치인을 종종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애초에 비장애인에게 유리한 속도와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기울어진 공정성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 풍경 전체를 보려면 세상에서 한발짝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이 세계가 어떻게 기울어져 있는지 알기 위해 나와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사람과 대화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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